<경향> 백기완의 예술세계, 노동절 전야 광장 밝힌다
백기완의 예술세계, 노동절 전야 광장 밝힌다
5주기 맞아 30일 청계광장서 ‘제1회 문화예술 한바탕’

고 백기완 전 통일문제연구소장. 연합뉴스
‘사회 불평등’에 맞서 재야 운동
투옥·고문 겪어…대선에 출마도
가수 정태춘 등 200명 무대 올라
“청년층 위한 문화 콘텐츠 선보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고 백기완 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시가 오는 30일 청계광장에 다시 울려 퍼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은 백 소장의 시 ‘묏비나리’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 등은 백 소장 5주기인 올해 노동절 서울 청계광장 일원에서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을 연다고 27일 알렸다.
기일인 2월15일이 아니라 노동절 전날을 행사일로 정한 것을 두고 재단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부정당한 채 차별과 배제 속에 여전히 생존의 위기로 인해 허덕이고 있다”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며 함께 잘 사는 노나메기 벗나래(세상)’를 얘기하던 백 선생의 외침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혜화동의 백기완 마당집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제공
‘노나메기’는 ‘있는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백 소장 사상 속에서 진화했다. 그는 인간 사회는 경쟁이 아닌 나눔으로 유지된다고 믿었다. 인간은 본래 의존적 존재로 함께 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생전 백 소장 생각이었다. 이 뜻으로 자본의 착취와 사회 불평등에 맞섰다.
백 소장은 엘리트주의를 거부했다. 장터의 말, 노동자의 말을 택했다. 그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1950년대는 달동네에서 야학을 하며 도시빈민운동에 나섰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농촌에서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4·19혁명 이후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재야 운동의 선봉이 섰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 1969년 3선개헌 반대운동, 1971년 유신헌법 반대를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1976년 3·1 구국선언,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설립 등을 주도하고, 노동자·민중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군부 독재 시절 가장 많은 가택 연금을 당했다. 투옥과 고문도 당했다. 끝까지 타협을 거부했다. 그의 사상이 너무 급진적이라 동조하지 않는 이들, 비판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믿는 대로 실천하고, 끝까지 자신의 기준을 지키다 간 그의 행적은 많은 이들이 지금도 그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는 예술의 중요성도 일찍이 강조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장산곶매, 이심이, 버선발, 뿔로살이, 쇠뿔이, 새뚝이, 달동네, 새내기, 비나리 등의 시와 이야기를 남겼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 민요연구회, 민중문화운동연합, 민족미술협의회,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같은 단체들 설립도 이끌었다.
김창남 성공회대 명예교수 겸 음악평론가는 “김민기, 김지하, 황석영씨 등이 모두 그의 제자들”이라며 “민족적인 게 뭔지, 민중적이고 진보적인 게 뭔지 고민하며 남긴 그의 이야기들이 민중민주문화예술인들의 원천”이라고 했다.
백 소장의 노나메기 정신과 예술론을 30일 행사에 담았다.
행사 기획자 중 한 명인 박민희씨는 “개인화된 20~30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전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다”며 “매년 노동절 전야마다 한바탕 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가수 정태춘과 송경동 시인 등 200명에 달하는 출연자들이 무대에 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