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공모전_우수상>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_허우진

"계속 그렇게 해", 가슴에 벼락같이 꽂힌 백기완 선생의 한 마디

[백기완 선생 5주기 맞이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_우수상]

고 백기완 선생 5주기 및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2026년 4월 30일)을 맞아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께 감사드리마,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3편을 공개합니다.

 2015년 2월에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 때 백기완 선생을 부축한 신학철 화백의 모습

2015년 2월에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 때 백기완 선생을 부축한 신학철 화백의 모습 ⓒ 채원희


2014년 5월 18일이었다. 10년이 지나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세월호 사고가 있던 해의 오일팔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항의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시민들의 행렬은 청와대로 향했지만, 견고한 경찰의 벽은 그 길을 완강히 가로막았다. 수백 명의 경찰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단 한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굽이치는 백발과 깊게 파인 주름, 그러나 눈빛만은 형형하던 노인. 고통받는 민중의 곁을 평생 지켜온 백기완 선생이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2013년 대학에 입학하던 해는 이명박 정권을 지나 박근혜 정권이 시작되던 해였다. 현대차 희망버스 건과 철도노조 위원장 체포 방해 건으로 또 기억도 안 나는 여러 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집에는 매일같이 출석 요구서가 날아왔고, 사랑과 명예 그리고 이름 앞에서 흔들리던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오늘은 몸을 좀 사려야지 했는데, 하필 5월 18일에 경찰에 둘러싸인 백기완 선생을 마주해버렸다. 무슨 용기였을까 경찰들을 비집고 그 원 안에 들어갔다. 한참을 경찰들과 소리치고 싸우다 경찰들이 물러났다. 백기완 선생이 나를 불렀고, 나는 눈물이 펑펑 흘렀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백기완 선생은 내 어깨를 짚으며 말씀하셨다. "계속 그렇게 해."

내 기억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선생의 백발
그 짧은 한마디는 벼락처럼 내 가슴에 꽂혔다. 훗날 알게 되었다. 그 여섯 글자는 사실 '님을 위한 행진곡'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요약이었다는 것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말고 평생 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그 처절한 다짐. 선생은 그 모든 가사를 단 세 단어로 응축해 나라는 미숙한 청년의 등 뒤에 밀어 넣어 주신 것이었다.
백기완 선생 5주기를 맞이하며 다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10년 전 광화문에서 마주했던 선생의 백발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 등대처럼 빛난다. 35살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자주 부끄럽지만, 적어도 나를 바로잡아 줄 단 하나의 북소리를 가슴에 품고 산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해"라는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을 내딛는다.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행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설령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황량한 벌판이라 할지라도, 나는 선생의 그 목소리를 지팡이 삼아 새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2014년 5월 18일에 대한,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해 준 세 단어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응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