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공모전_우수상>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_김기성

나는 이미 '그 노래' 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백기완 선생 5주기 맞이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_우수상]

고 백기완 선생 5주기 및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2026년 4월 30일)을 맞아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께 감사드리마,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3편을 공개합니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백기완 선생 4주기(2025년 2월 15일)를 맞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가 열렸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백기완 선생 4주기(2025년 2월 15일)를 맞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가 열렸다. ⓒ 이정민


민주화 열기가 가득하던 1987년,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민주화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대가로 해고되었다. 해고는 여섯 달이나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우리집은 무너졌다.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등록금을 내야 했던 시절, 돈이 없으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해고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동네에서 어머니는 나의 등록금을 빌리기 위해 애를 썼다.

납부 기한 마지막 날 해질녘이 되어서야 마련된 등록금을 내기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의 학교로 내달렸다. 내가 가려던 중학교는 학교에 직접 등록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달리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혹시라도 돌아가야 할까 봐 두려웠다. 그 길은 단순히 학교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를 가르는 길처럼 느껴졌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학교, 담당자는 이미 퇴근 준비가 끝나 있었다.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등록을 마친 나는 그렇게 겨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왜 해고당해야 했는가
돌아보면, 달리면서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왜 아버지가 해고당해야 했는지, 왜 그 일 때문에 내가 학교에 가지 못해야 하는지. 거창한 사회적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너무도 부당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달리는 동안 한순간이라도 쉬었다면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입학한 중학교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사를 담임으로 만났다. 아마도 오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는 수업이 끝난 후 반 전체를 남게 했고 칠판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가르쳐주고 반 전체가 함께 부르게 했다. 교실 안에서 우리는 조금 어색하게, 그러나 점점 더 크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 그 노래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가사의 의미도, 그것이 어떤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다만, 그 노래는 이유 없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아마도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기억에 가까운 것일 게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삶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감각을 말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마다 떠오늘 그날의 기억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 백기완 선생 4주기(2025년 2월 15일)를 맞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가 열렸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백기완 선생 4주기(2025년 2월 15일)를 맞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특별전시가 열렸다. ⓒ 이정민

이후 나는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각종 시위 현장에서는 언제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중학교에 가기 위해 달리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숨 가쁨과 두려움, 그리고 멈추지 않았던 발걸음이 어느새 노래 속에 함께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중가요는 나의 삶에 항상 함께하는 노래들이었고 그 노래들이 더 널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에 2001년 민중가요 공유 사이트인 'PLSong.com'을 만들었다. 지금은 민중가요의 기억을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역사로 남기기 위한 민중가요사료관을 준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했던 기억과 젊은 교사의 열정 덕분에 배운 '님을 위한 행진곡'은 나를 바꾼 노래라기보다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나의 삶에 이름을 붙여준 노래였다.
나는 그 시절 그 노래를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노래 속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