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겨레> 광장은 자유롭게 모여 문화와 예술을 나눌 마당이어야

백기완 5주기…이념 들이대며 광장을 막겠다니
[왜냐면] 2026.3.24 게재

2021년 2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에 들어서고 있다. 장례위는 백 소장이 생전 민족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만큼 꽃상여와 대나무 깃대가 달린 만장, 각종 상징물 등을 사용해 전통 장례 절차를 재현하는 노제를 지냈다. 연합뉴스

2021년 2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에 들어서고 있다. 장례위는 백 소장이 생전 민족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만큼 꽃상여와 대나무 깃대가 달린 만장, 각종 상징물 등을 사용해 전통 장례 절차를 재현하는 노제를 지냈다. 연합뉴스

정지영 | 영화감독

전세계가 주목하는 케이(K)-민주주의의 이면에는 케이-컬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케이-컬처라고 하면 세계 무대에서 사랑받는 대중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를 먼저 떠올리지만, 케이-컬처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곳에 있다.

장이 서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터로 모여들었다. 사당패의 장단이 울리고, 탈을 쓴 광대들이 세상을 풍자하면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 속에는 억눌린 마음을 풀어내는 위로가 있었고, 권력과 세상의 모순을 비트는 날카로운 지혜도 담겨 있었다. 풍물 장단이 울리면 처음 본 이들도 함께 어깨를 걸고 어울렸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한바탕 어울리던 마당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확인했고 공동체의 숨결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오래된 힘이었는지 모른다. 권력 앞에서 주눅 들기보다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억압 속에서도 웃음과 노래로 서로를 위로했던 민중의 문화. 그 살아 있는 문화의 토양 위에서 오늘의 케이-컬처도 자라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는 문화의 의미를 너무 좁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려한 상업 콘텐츠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사이,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해 온 민중의 문화는 점점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을 준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잊혀가던 마당의 숨결을 다시 불러내고, 함께 웃고 노래하며 이어져 온 민중의 문화적 전통을 오늘의 광장에서 다시 만나보자는 뜻이다.

백기완이 누구인가. 장산곶매, 이심이, 새뚝이 등 우리 민중 문화와 민중 해방 정서가 아로새겨진 이야기를 캐고 전하는 시대의 이야기꾼이었으며 달동네, 새내기, 모꼬지, 동아리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 쓴 민중 미학의 선구자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온갖 고문으로 생사를 넘나들 때 감옥 안 천장에 눈으로 쓴 것이 ‘묏비나리’다. 이 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되어 집회 현장은 물론 5·18민주화운동 등 정부 행사에서도 불리고 있으며, 이젠 국경을 넘어 민주화를 외치는 미얀마 민중의 노래가 되었다.

백기완 선생의 풍물과 그림, 춤과 시 등 장르를 초월한 민족 민중 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사랑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이 되었다. 이제 그 예술가들이 백기완 선생 5주기를 맞이하여 민중 문화 복원과 계승 발전을 고민하며 한발 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꽃을 피워낼 장소인 광장을 이용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물론, 시민들과 만날 만한 서울 시내의 광장은 행정당국이 여러 이유를 달아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음달 30일 노동절 전야제 형태로 백기완 한바탕이 개최되는 것을 정략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 공연을 막겠다는 것이라면 참으로 근시안적이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장은 원래 권력의 공간이 아닌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내보이는 곳이 바로 광장 아니던가. 민주주의는 문서 속의 활자가 아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고 노래하며 생각을 나눌 때, 그 숨결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 광장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심장이 뛰는 자리다.

광장은 열려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모여 문화와 예술을 나눌 마당이어야 한다. 그곳에서 풍물이 울리고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웃을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서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케이-민주주의와 케이-컬처를 지탱해 온 가장 오래되고도 따뜻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