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오마이뉴스> 5주기_ 장산곶매 백기완 선생님, 그립습니다(최영록)

'장산곶매' 백기완 선생님 그립습니다

최영록 2026. 2. 5. 15:27

[백기완 선생 5주기, 추모 편지⑥] 최영록(생활글작가)

오는 2월 7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백기완 선생님 5주기(2월 15일) 추도식이 열립니다. 추도식을 앞두고 생전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했던 이들이 추모글을 보내와 여덟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최영록 기자]

▲  2024년 5월 백기완기념관 문을 열면서 내건 한소리 “이거 봐 윤석열이, 나 알잖아, 내 말 들어!” 백기완마당집 개관 ⓒ 노순택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장산곶매 백기완 선생님.

한 장의 글판 사진과 그 문구를 보면서 선생님을 추억하고 추모합니다. 어느새 5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역사는 한 걸음씩 느리게 진보한다지만,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인데도 달구름(세월)만큼은 무심하기 짝이 없이 흘러갑니다.

2024년 5월 즈음, '백기완 마당집'을 열면서 2층 전면을 덮을 만한 크기의 글판에 "이거봐∼/윤석열이!/나 알잖아/내 말 들어"라고 대서특필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발했습니다. 요즘말로 신박했지요. 탄복을 했습니다. 진짜, 정말로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육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글이 곧 그 사람'이듯 그냥 그대로 선생님을 뵌 듯했습니다.

조어(造語) '백기완스럽다'는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입니다. 선생님을 뵈는 듯했으니까요. '을씨년(을사년)스럽다' '검사스럽다' 등의 조어는 이미 생명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우리 역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유행어입니다. 병상에서 삐뚤빼뚤 쓰신 마지막 글자가 '노동' '해방'이었다지요. 아아, 선생님은 끝끝내 현역 불쌈꾼(혁명가)이셨습니다.

선생님은 2021년 초 정치판을 한눈에 알아 보셨지요? 때론 역사를 배반하는 게 정치라는 것을요. 국민들 앞에서 어퍼컷을 마구 해대는 '버마재비'가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 귀태(鬼胎)라는 것을요. 하늘에서 다 알고 계시겠지만, 딱 한마디만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 귀태가 별스러운 언행으로 나라 전체를 기우뚱하게 하다가 끝내 상상하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선생님이 믿었던 국민들은 역시나 현명했습니다

▲  2011년 선생이 벽시 운동을 벌이던 때 통일문제연구소 벽시 앞에서 ⓒ 최영록

그러나 선생님이 눈을 감는 순간까지 믿었던 국민들은 역시나 현명했습니다. 촛불항쟁도 그러했지만, 빛의 혁명, 알록달록한 응원봉 항쟁은 또 어떻구요. MZ세대를 누가 탓을 하나요? 그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제사 악몽의 3년이 지나고 여명(黎明)이 밝아오는 듯합니다. 누구는 국운이 트였다고도 말합니다. 선생님, 정말 그런 것 같지요? 그렇다고 호탕하게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밤중 국회의사당 앞, 신새벽 남태령 고갯길, 엄동설한 한남동 길 위의 키세스 군단을 보면서, 촛불항쟁 때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떠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기죽지 마라"며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굳세게 내미시던 그 모습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말 갈깃머리'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선생님의 사자후(獅子吼)는 또 어떻구요. 선생님은 영락없이 유행가 한 자락을 뽑으며 한바탕 우셨을 것 같습니다.

허나 이제 다시는 우실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나 보고 싶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수십 년 만에 하늘에서 만나뵙고 민족의 기운이 펄펄 살아 있는 맛깔스런 옛날 이야기를 더 듣고, 우매한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하고, 귀를 뻥 뚫리게 하며, 널리널리 퍼트려주실 일만 남았습니다.

고은 시인의 <백기완> 실명시를 다시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강한 것이
이렇게도 자아인 것을
50년대 폐허 명동의 쌍도끼!
강한 것이
이렇게도 웅변인 것을
웅변이었다가
쓸데없이 눈물 한 방울인 것을
그의 손은 가방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보따리를 든 적 없다
오직 두 눈과 입 하나뿐
그것만이면 천군만마에 채찍이니
눈 감았다 뜨면
그도 없고 그의 전사들도 다
달려가
오로지 누런 먼지만 인다
자아 이외에
자아의 조국 이외에
자아의 조국에 있어야 할 무력 이외에
그에게는 장차 드높이
휘날리는 고독이 있어야 한다

오로지 '강한 자아' 선생님의 휘날리는 고독, 7일 저도 무릎을 꿇고 선생님 앞에서 속울음을 길게 울겠습니다. 헤어지는 동지들에게 어디에선가 선생님이 한복차림으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시던 흑백사진을 기억합니다. 왜 그리 마음이 짜안하고 아프던지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언제든 뵙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7년 잦은 병치레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사무실에서 가까운 창경궁을 찾았다. 
ⓒ 채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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