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백기완,'다시 반딧불이를 찾아서'
백기완, '다시 반딧불이를 찾아서'
김삼웅2025. 4. 7. 15:18
[광복80주년명문100선 89] "다시 진꼴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다."
▲ 2015년 2월에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 때 백기완 선생을 부축한 신학철 화백의 모습 ⓒ 채원희
백기완(1933~2021)은 민주·통일·노동운동가이면서 대통령 후보를 지낸 정치인인가 하면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앞서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하고 남한으로 내려와 1950년대에는 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 60년대에는 한일협정반대운동, 70년대에는 장준하와 함께 반유신투쟁을 주도하다가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되고, 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입후보하였다.
지은 책은 <항일민족론>, <백범어록>(편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장산곶매 이야기>, <우리 겨레 위대한 이야기>,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 <젊은 날>, <백두산 천지> 등이 있다.
신학철 화백이 2025년 2월 '백기완 마당집'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명진스님이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찌질한 거짓말쟁이 윤석열을 보면서 '저놈을 형틀에 묶고 이실직고할 때 까지 매우 쳐라'라고 일갈하셨을 것 같다."고 언급할만큼 백기완은 평생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이 살았다.
소개하는 글은 2009년 9월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한겨레 출판)의 머리말 '다시 반딧불이를 찾아서'이다.
내가 대여섯 살 적이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콩알만 한 불빛이 하도 멋있어 나보다는 한 서너 살 위인 어느 언니한테 물었다.
"언니, 저게 뭐야."
"응, 저거. 반딧불이지."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왜 밤하늘을 날아가는 거야. 저네 집은 아궁이 아니야."
"응, 저기 저 숲속으로 가는 거야. 거기엔 반딧불이의 어머니가 있거든."
쪼매난 불빛이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말에 나는 그만 뭉클, 대끔 와라와라 쫓아 들어갔다. 그러나 된통 시꺼먹고(혼나고) 말았다. 캄캄한 숲속엔 끄름(그을음) 같은 어두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날 뒤 또 물었다.
"언니, 반딧불이를 따라가 보았어. 그런데 아무것도 없던데."
"야 임마, 가다가 마니까 그렇지. 끝까지 가보아야지."
"끝까지 가 보아야 한다"는 그 말에 또다시 시껌, '이참엔 끝을 보고야 말리라'하고 깊이깊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허둥지둥, 마침내 무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나오는 내 꼴을 본 그 언니의 말이었다.
"못난 놈. 넌 임마, 반딧불이만도 못하구나."
"뭐. 날더러 반딧불이만도 못하다고?"
어릴 때 그 한마디는 내 한 살매(일생)을 내려치는 채찍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어든 하기를 차름(시작)하기만 하면 끝까지 해보려고 해왔다.
'그렇다, 사람은 꾀로 되는 게 아니다. 억척같은 끈기, 그도 아니면 목꽂이(온몸으로 들이대는 것) 같은 대들(도전)이 사람을 만든다 인석들아', 그러면서 어떤 일에든 아각대곤(아우성치곤) 했지만, 그러나 나에게 엥겨지는 건 마냥 꺾임(좌절)과 깜떼(절망) 뿐이었다. 한 살매 한 일도 없지만 하는 일 쪽쪽 죄 진꼴(실패)이었다. 이 말이다. 나는 나를 누를 단추도 없었다.
그래도 누더기 하나만은 남았다고 할까. "사람은 한 살매 내내 쓰디쓴 꺽임과 아뜩한 깜떼만 먹고도 산다" 그거였다.
이 글들은 바로 그 억은(모자란) 삶의 그림자 같은 이야기들일 터, 그런데도 이것들을 한 석 달 동안 <한겨레>에다 주접을 떨었더니 사람들이 하는 말, "읽기도 어렵고 낱말도 어렵다" 그랬다. 따라서 이것들은 마땅히 불을 질러버렸어야 할 것인데도 이렇게 글묵(책)으로 엮으면서도 그 어렵다고 하는 낱말들을 나는 하나도 바꾸질 않았다. 도리어 이따금 낑겨져 있던 영어와 한문 낱말들을 이 잡듯 모두 빼버렸다. 몽땅 우리말만 썼다.
"읽기가 힘이 든다는데 왜 그랬느냐"라는 것은 묻질 말아 달라. 내 맞대(대답)는 한숨밖에 없으니 무슨 말을 따로 하겠는가.
다시 진꼴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