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최재봉 기자2025. 2. 5. 15:25
4주기 맞아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회
5일 오전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이 백기완 선생에게 선물한 그림 ‘어머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최재봉 기자
“백기완 선생님은 언제나 투쟁 현장에 있는, 투사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본래는 서정적인 걸 좋아하셨습니다.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선생님은 사물을 보면 직감적으로 바로 느끼고 알아차리시는 것 같았어요. 미술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 해박했지요. 민주 투사이면서 예술가이자 연행가이기도 했지요.”
통일·노동 운동가 백기완(1933~2021) 선생의 4주기(2월15일)를 앞두고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전시는 5일 개막해 해방 80주년인 8월15일까지 이어진다. 신학철 화백이 백 선생의 책과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과 육필원고, 기록사진 등 90여점이 나온다. 개막을 앞두고 5일 오전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 화백은 생전 백 선생과의 인연,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5일 오전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맨 왼쪽)이 작품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신 화백 오른쪽으로는 차례대로 명진스님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백기완 선생의 맏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최재봉 기자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게, 1980대 말에 백 선생님을 처음 만났어요. 제 그림 ‘모내기’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잡혀 갔다가 보석으로 나오고 얼마 안 있어서 백 선생님이 점심을 사겠다고 전화를 하셨어요. 그때 송추 계곡에 선생님을 포함해 한 열명 정도가 모여서 보신탕을 먹었지요. 그 뒤로 서서히 친해져서 선생님의 책에 실리는 삽화도 그리고, 선생님이 추진한 ‘노나메기 문화관’ 종잣돈으로 쓸 그림도 그리게 되었어요. 그 그림들을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근사하진 않지만 반갑고 고맙네요.”
이번 전시에는 백 선생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을 읽고 떠오른 영감을 유화로 그린 연작 30점, 백 선생의 어린이 통일 이야기 ‘하얀 종이배’ 신문 연재 삽화 40점을 비롯해 ‘백산 일어서다’ ‘어머니’ ‘백두산 호랑이’ ‘부활도―산 자여 따르라’ 등이 출품되었다. 전시 취지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는 미술평론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명진스님, 그리고 백 선생의 맏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가 동석했다. 유 교수는 “백 선생님은 특히 신학철 선생의 그림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다. 신 선생이 민중의 심성에 다가가는 그림을 그렸다고 보신 것이다. 정서적으로는 정직하고 회화적으로는 리얼하게, 진짜 민중의 삶에서 우러난 그림이라고 평가하셨다”고 소개했다.
5일 오전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신학철 화백(맨 오른쪽)이 작품들에 관해 설명하며 웃고 있다. 신 화백 왼쪽으로는 차례대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와 명진스님, 백기완 선생의 맏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최재봉 기자
백 교수는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림들을 보는 마음이 각별하다. 특히 당신의 어머니 모습을 그린 ‘어머니’라는 작품을 보니까 다시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울컥하게 된다. 아마 아버님도 지금 이 전시장의 그림들을 보면서 울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라는 작품은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 가운데 한점이고 백 선생이 운영하던 통일문제연구소의 기금 마련을 위해 기증한 작품인데, 백 선생은 “이 한점만큼은 절대로 팔 수 없다”며 아예 숨겨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유 교수도 “내가 살면서 그림을 보고 운 건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잔치 때 우리네 어머니들이 부엌 구석 같은 데에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에 담은 국수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런 그림은 밀레도 못 그렸고 반 고흐도 못 그렸다”고 맞장구쳤다.
5일 오전 서울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전시 취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학철 화백, 명진스님, 유 교수, 백기완 선생의 맏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최재봉 기자
백 교수는 “아버님은 저희에게 늘 ‘역사적 긴장을 살아라, 시적 긴장을 살아라’라고 하셨고, ‘중요할 때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건 역사적 반동’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새기며 이번에 한남동 집회에 나가 보니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이더라. 아버님이 이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감격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명진스님도 “지금은 어른이 없는 시대인데, 그래서 백 선생님이 더욱 그립고 지금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찌질한 거짓말쟁이 윤석열을 보면서 ‘저놈을 형틀에 묶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라고 일갈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백 선생 4주기에 맞춰 오는 14일 저녁 6시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거통고 농성장에서부터 헌법재판소까지 민주주의 대행진이 펼쳐지고, 기일인 15일 오전 11시 경기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서는 4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