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 기죽지 마라: 우리가 백기완이다!
백기완 선생과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memberNo=606174&volumeNo=35411291 함께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은 39명의 ‘우리’가 모여 함께 쓴 백기완 선생 2주기 추모집이다. 이 책을 쓴 이는 노동자와 농민,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과 사회 활동가들이다. 이들에게 선생은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기죽지 말라고 등 두드려 주시던 어른이었다. 돌아가신 지 두 해, 여전히 선생이 있던 자리는 뼈가 시리는 겨울바람이 분다. 그래도 선생을 존경하는 이들이 모여, “우리가 백기완이다!”를 외치며 오늘도 용감하게 한발 떼기를 한다.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39명의 활동가들
전작 『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가 백기완 선생과 젊은 시절부터 함께하며 운동했던 동지와 친우들의 글이라면, 이 책 『기죽지 마라―우리가 백기완이다!』는 현장에서 운동하는 이들이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자본가에 맞서 생명을 건 투쟁의 현장에서, 아이를 잃고 울부짖는 부모의 옆에서 선생은 늘 함께하셨다. 혹시라도 모진 말에 다치고 차가운 시선에 주눅들까 걱정하며, 선생은 늘 어깨를 툭툭 치며 ‘기죽지 마라! 당당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기완 선생의 생전을 회고하는 39명의 활동가들이 ‘백기와 선생과 나’는 어떤 인연과 만남으로 이어져 있는지 한 편 한 편 사연들을 담아냈다.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다
백발의 불쌈꾼(혁명가) 백기완. 선생이 가신 지 벌써 두 해가 다가온다. 평생을 자본가와 권력에 맞서 싸운 선생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쓴 글은 “노동해방” 네 글자였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완수하고자 한 것도, 지키고자 한 것도 노동 그리고 해방이었다.
백기완 선생 별세 두 해맞이 추모집은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선 활동가들과 농민운동과 빈민운동 활동가, 연대 투쟁한 이들을 아울러 38인의 글로 꾸몄다. 그리고 노나메기 민중사상 연구소장 이도흠 선생이 머리글과 사진 에세이를 집필했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39편의 글들이 모여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사가 되었다. 돈도, 권력도, 무기도, 뒷배도 없지만 오직 자신의 결기와 동지들의 연대로 버티며 노동과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한 기록들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의 편에 서서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정리해고를 양산하며 공공영역의 사영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금융부문에서 다양한 사기를 동원하여 수탈하였다. 그럼에도 이를 견제할 국가는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서 오히려 노동자 민중에게 물리적·문화적·구조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생존위기에 몰린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 빈민들은 운동을 하는 것이 목숨을 걸어도 승리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고 자본과 권력에 맞서서 맞장을 떴고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마다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 선생은 지치고 좌절했을 때 기죽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라는 선동가였고, 현안을 넘어 노동해방을 지향하라는 길눈이 스승이었고, 언제든 달려와 앞장서서 함께 연대하고 때로는 공감의 눈물을 펑펑 쏟는 동지였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언제든 감싸 안고 다시 힘을 불어넣어주는 기댈 언덕이었으며, 길을 잃었을 때 먼저 길을 밝히고 뚜벅뚜벅 걷는 길목버선이었다. 이 책에는 39명의 ‘그들’과 함께한 백기완 선생의 분노, 눈물, 땀, 웃음이 있으며, 그런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기억의 주름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
1장 불쌈꾼 백기완: 존재만으로도 힘이셨던 선생님
“이봐! 걱정할 거 없어! 배짱 있게 행동해! 그놈들 아무것도 아니야!”
선생님께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눈을 마주치며 내게 해 주신 말씀이다. 파업을 하고 투쟁을 하고 연대를 느끼고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며 거리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늘 백기완 선생님을 뵈었다. 흰색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호통을 치시는 모습은 단번에 머릿속에 또렷이 박혔고, 먼발치에서만 뵙다가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두근거리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고진수, 「이봐! 기죽지 말고 배짱을 가져.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살어!」 중에서
“힘들지? 잘하고 있지? 잘해야 해. 이 할애비가 함께하고 있어.”
20대의 조합원과 60대의 조합원들에게도 벽이 없는 분이셨다. 잔잔한 이야기꾼처럼 말씀을 시작하다가 서울대병원 로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선동하면 모두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이 장기화되어 조합원들이 불안하고 두려워할 때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며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했다.
―이향춘, 「기억하고 실천하는 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계신다」 중에서
2장 그리움: 쌈꾼들의 눈을 틔워 주시던 그 헌걸찬 목소리
KTX가 뭐냐! “빠른 기차”라고 하면 되지! 영어로 된 KTX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우리를 빠른 기차 승무원이라 부르시던 분이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걸어오신 그분은 좌충우돌하며 투쟁하는 우리를 안타까워하시며 위로해 주셨다. “사회가 잘못했다, 정치가 잘못했다, 이철 사장이 잘못했다.” ‘취업 사기’, ‘불법파견’, ‘비정규직’이라는 생소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단어만 배우다 처음으로 우리 아픔을 보듬어 주는 ‘진짜 어른’을 만났다.
―김승하,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는 목소리를 기억하고 전하렵니다」 중에서
주눅 들지 마!
쩨쩨하게 굴지 말고.
사내놈이 울긴 왜 울어?
대륙을 품고 세상을 품고 노동자답게 어깨를 펴, 이 자식아!
썩어 문드러진 자본주의 세상 확 까부숴야지!
김정우 임마, 너가 싸움꾼이야!
울지 마!
―김정우, 「노동자 쌈꾼들의 눈을 틔워 주시던 그 헌걸찬 목소리」 중에서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싸운다. 죽은 이를 기억하며 싸운다. 싸우다 넘어지고, 싸우다 굶고, 싸우다 갇히면서도. 가끔은 싸우다 울겠지. 윤주형의 죽음으로 김수억이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손 내민 이들 중 한 명이, 아주 각별하게 손 내민 이가 백기완이었다. 나는 김수억이 시킨 일을 마지못해 하다가, 그만 백기완과 친구가 되었다.
―노순택, 「이름들에 새겨진 기억」 중에서
첫 번째는 아이들을 죽이고 두 번째는 부모들을 죽이고 세 번째는 온 국민을 다 죽인다고, 나라의 막심(국가 폭력) 앞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광화문 심판대의 외침에 나라의 어른으로 언제나 일선에 함께 계셨던 선생님! 세월호 진상규명이 묘연해질 거라는 직감에 나라의 어른들이 나서 주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을 때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무심하게 시간은 흐르고 퇴색해 가는 진실 속에서 시대가 역행한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선생님이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영미, 「우리 아이가 큰 사명을 갖고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태어나도록 도와주소서」 중에서
3장 한발 떼기: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성치 않은 몸이라 그저 묵념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손자뻘 되는 아들한테 큰절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라웠고 왜 그런지 뒤이어 찾아오는 서러움에 목이 메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연하듯 절 받는 입장이련만 이치에 맞지 않은 잘못된 세상을 일깨워 주는 듯한 행동에 갑자기 억울함과 부당함이 서러움으로 변하면서 저절로 통곡이 흘러나왔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어른이 백기완 선생님이셨다. 두 달가량 장례는 미뤄지고 조바심으로 착잡한 가운데 수차례 추모 집회가 있던 날도 백 선생님은 늘 현장에 계셨다. 이처럼 내 곁에서 큰 의지가 되어 주심을 평생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미숙,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다」 중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알통하고 양심밖에 없는 사람이 짓밟힐수록 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 불꽃이 인다”고 했습니다. “불꽃, 그것을 우리말로 서돌이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진짜 서돌이라고, 짓밟힐수록 온몸에 불꽃이 피는 서돌이가 되라고 했습니다.
―김수억, 「여기 ‘노동 해방, 통일 세상’을 향해 한발 떼기를 하는 새뚝이들이 있습니다」 중에서
여기 지금 ‘용산참사’라고 그러는데, 7년 전 내가 여기 새벽에 나와서 했던 첫마디가 ‘용산참사? 아니야! 용산에서는 참사가 없었어! 이명박 정권의 학살이었지! 여기는 이명박이의 학살 현장이야!’ 내가 그랬어.(백기완, 용산 7주기 추모대회 추모사 중)
―이원호, 「열사들의 뜻을 불씨로 일어나자!」 중에서
4장 노나메기: 너와 나의 노동생산물이 모두 사회의 것이 되는 벗나래를 향하여
그때 백기완 선생님을 만났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릿결, 흰색 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신문 사회면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온전한 내 편이 없던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회사와 정부와 언론과 사법부가 내뱉는 자본주의 맹신을 경계하라는 그의 말은, 새벽 졸음을 쫓아내는 죽비 같은 전언이었다. … 제 몸을 스스로 쳐 길을 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이후 쌍용차 노동자들이 겪었던 수없이 많은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결국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몸부림의 지침서였다.
―고동민,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온전한 내 편이 되어 줄 그날을 함께 만들어 가자」 중에서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한다는 것은 ‘주눅 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기완 선생님은 집회 때나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 오실 때 늘 “당당하라”고 이야기하셨다. 백기완 선생님은 우리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겠지만, 소심한 내 입장에서 선생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은 ‘주눅 들지 않는’ 것뿐이다. … 그런데 백기완 선생님이 ‘당당하라’고 이야기하실 때 거짓말처럼 모두들 웃으며 어깨를 폈다.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눈치 보며 일하고, 차별 때문에 상처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투쟁을 하면서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었고,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도 하고 대거리도 하고, 같이 투쟁하는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만나서 연대하고, 또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투쟁이 힘들다 하더라도 인생의 긴 시간에서 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이토록 거침없을 때가 또 있을까. 그러니 정말로 당당해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주눅 들지 않을 테니,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당당해지자고.”
―김혜진, 「비정규직 운동은 모든 이들과 함께 이윤 주심의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중에서